횡성한우축제

횡성한우의 역사

소와 한우이야기

인간과 소의 만남

  • 소라는 동물과 인간의 각별한 사이는 아주 오랜 옛날, 고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소는 고대 신화에 신성, 힘, 재산의 상징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게 되는 소는 약 200만년 전 지금은 멸종된 오록스(Aurochs; Bosprimigenius)라는 종으로부터 진화되어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가 가축이 된 시기는 신석기시대 초기인 기원전 7,000년 전쯤으로 추정되는데,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사육되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서양에서는 소를 정복과 수렵의 대상으로 여긴 반면, 농경 생활을 하던 동양에서는 귀하고 친근한 동물로 여겼던 경향이 있습니다.

  • 횡성한우

한우의 시련과 성장

횡성한우

  • 우리의 아픈 역사, 일제강점기에는 우리의 소 '한우'도 함께 시련을 맞게 됩니다. 1938년 조선총독부가 '황갈색만 한우로 인정한다'는 심사표준규정을 만들어 칡소와 흑소를 대량으로 공출했으며, 일본소의 품종개량, 식량조달 등의 목적으로 한우 150만 마리를 수탈해 갔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수탈로 한우의 다양성이 말살되고 개체 수가 급감하는 시련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광복 이후 농촌진흥청에 의해 우수 한우 품종 육성과 사육방법이 개발되면서 생산성이 증대되기 시작해 사육두수가 늘어나고 품질 또한 고급화 되어 현재의 한우 산업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 최근에는 누렁이 단종화에 사라졌던 칡소가 복원되어 울릉도에서 40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으며, 흑소는 제주도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역별로 차별화 된 한우 고급육 브랜드가 등장하고, 현재는 지역별, 농가별 한우의 맛을 차별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어 200여개의 한우 브랜드가 시장에서 경쟁중이지만, 그 중심에는 단연 우리 '횡성한우'가 우뚝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민족과 한우

우리의 소 '한우(韓牛, Bos taurus coreanae)'는 단순히 우리나라에 사는 소가 아닌 한반도에서 오래도록 길러 온 재래종으로써, 오록스에서 북방계열로 진화한 소입니다. 흔히 알고 있는 황소뿐 아니라 칡소와 흑소도 한우에 속합니다. 시인 정지용의 작품'향수'에 등장하는 얼룩빼기 황소와 동요 속 얼룩송아지는 칡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 횡성한우

    오랜 세월 농경 생활을 했던 우리 민족에게도 역시 소는 친숙하고 각별한 동물입니다. 소를 키운 역사는 무려 4,000여 년 전부터 추정됩니다. 소는 고대부터 제천의식의 제물로 쓰일 정도로 신성시하던 존재였습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지증왕이 밭갈이를 권하며 비로소 '일소'가 됐다고 전해집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재산목록 1호가 바로 소였습니다. 그만큼 소는 주요 이동수단이자 성인 남성 5~6인분의 몫을 해내는 중요한 농기구로, 귀한 먹을거리로 우리의 삶 도처에 존재했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선인들은 한우를 동반자로서 '생구(生口)라 하여 외양간을 뒷간보다 가깝게 두고 가족의 일원으로 대했습니다.

  • 횡성한우

    한우에게도 설날에는 만둣국,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나물로 상을 차려주며 한 해 농사를 잘 지어보자고 격려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소를 나라에서 관리했습니다. '우금령(개인의 임의 도살을 금지하는 것)'을 정해 소가 늙어 죽을 때쯤에야 도살할 수 있었고 이 또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양에서 소를 도살한 백정은 90리 밖으로 내쫓기까지 했습니다. 도살하기 위해서는 관청에 신고 후 세금까지 내야 했습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한 '감살도감(임시관청)'도 설치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양반들은 일반 백성들과 달리 '난로회'라는 고기 연회를 열어 몰래 즐겼다고 합니다. 해서 조선 초,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일부의 지배층을 들어 '육식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옛 한우의 발자취

한우는 5~6천년 전 유럽원우와 중국 남방황우의 교잡종이라는 학설과 유라시아에서 중앙아시아를 통하여 만주지역을 거쳐 이동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규원사화 단군가에는 "흰 소를 잡아 태백산기슭에서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한시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부여편에는 "나라에는 군왕이 있고 모두 여섯 가축의 이름으로 관직을 명하니,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대사, 대사자, 사자 등이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가축 이름으로 중요한 관직을 정했던 것입니다.

  • 불효두(육우)
  • 상문(육우)
  • 백우
  • 청우
  • 용문(황우)
  • 일태황
  • 호척(황우, 흑우)
  • 녹반우
  • 황우

우의방 1399년 (정종)

고려 <우의방>은 조선왕조 초기(1399년 정종)에 편찬한 소와 말의 병과 관리에 대한 수의학서다. 개국공신 조준, 김사형 등이 왕명을 받아 소를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법령을 만들고 소 보는 법 등을 편찬한 것으로 다양한 한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우사도 안약3호분 황해남도 안약군 용순면 위치, 축조년도 서기 357년

    고구려의 고분벽화인 안약 3호분에 "우사도"는 기와 모양의 지붕, 통나무 기둥과 구유에 검정소, 누렁소, 얼룩소 3마리 한우가 여물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뿔과 코뚜레, 고삐 등이 붉은색으로 표현한 것이 이색적이다.

  • 논갈이 김홍도 (1745~)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논갈이". 두 명의 농부가 쇠스랑으로 흙을 고르는 모습과 한 쌍의 한우가 논을 갈고 있다.